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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생각/생각 2022. 11. 2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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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말로 다재다능, 나쁜 말로는 다방면에 애매한 재능을 가진 사람. 한 가지 분야를 진득하게 개발하지 못하고 쉽게 그만둬버리는 사람, 한 마디로 끈기가 없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어린 시절엔 공부도, 피아노도, 운동도 잘하고 친구도 많아 늘 칭찬을 받았다. 고3 때는 음대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체육교육과에 지원해볼까 고민했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애매한 재능이 효력을 다하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질 즈음이면 금방 흥미를 잃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첫 아이를 낳고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다. 숨 쉴 틈이 필요했다. 아이가 12개월이 되자마자 어린이집에 보냈다. 엄마가 되고 처음 갖게 된 자유시간, 체력을 기르고 싶었다. 돈 안 들이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그즈음 SNS에 지인들이 달리기 인증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거다, 달리기!

    오래된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마침 그때 살던 집은 천변 산책로와 닿아있었다. 달리기 앱에서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를 들으며 발을 내디뎠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단거리 달리기는 꽤 빠르지만 오래 달리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학창 시절 체력장에서 1,000m를 달려본 게 전부. 그마저도 쉬지 않고 완주한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나의 많은 일들이 그랬다. 초반 스퍼트에만 반짝 몰아붙이고 이내 힘이 빠져 포기하고 마는. 그러나 이제는 느리더라도 오래 달리고 싶었다. 가이드를 따라 최대한 천천히, 서툴게나마 호흡을 조절하며 달렸다. 금세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멈추고 싶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생애 첫 2km를 완주했다.

    그날 이후 매일같이 달렸다. 힘을 다해 뛰고 나면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개운했다. 늘 무기력하던 일상에 생기가 돋았다. 운동 후 먹는 아이스커피는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체중도 두 달만에 10kg나 빠졌다. 근력이 생겨 아이를 더 오래 안아줄 수 있었다. 2km, 3km, 5km…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늘어나더니 세 달이 지나자 10km를 달렸다. 약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린 것이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솟았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고 이곳저곳 통증이 생겨 달리기는 멈춰야 했지만, 달리기는 나에게도 ‘끈기’라는 단어가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영어도 그렇다. 십 수년간 영어 공부를 해왔음에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데에 늘 답답함이 있었다. 서른이 넘어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껏 해왔던 문제 풀이용 공부가 아닌,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회화를 연습했다. 매일 짧은 영어 대본을 외우고, 화상 영어 사이트에서 외국인 튜터와 대화를 나누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했지만 퇴근이 없는 육아와 가사 노동 속에서 나의 하루를 쪼개고 쪼개 영어 공부를 위한 짬을 만들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실력은 늘 제자리였다.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쉬운 단어조차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한 문장을 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마저도 더듬더듬 내뱉을 뿐이었다. 머릿속에는 분명 많은 단어와 문법들이 있지만 막상 말하는 데에는 활용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문장 하나를 말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1. 우리말 단어를 하나하나 영어로 바꾼다.
    2. 제자리를 찾아 나열한다.
    3. 단어의 형태를 알맞게 고친다.

    이것은 마치 1. 뽑기 기계에 동전을 넣어 나온 캡슐을 모아 2. 일렬로 세워두고 3. 하나씩 포장을 벗겨내는 것과 비슷했다. 반년이 지나자 회의감이 몰려왔다. 튜터들에게 고민을 털어놔도 다른 언어를 공부해 본 경험이 없는 그들은 나에게 맞는 조언을 해주지 못했다. 이미 수강료는 결제를 했으니 마지못해 계속할 뿐이었다. 익숙한 튜터의 수업을 예약하고, 안부 인사를 나누고, 일상적인 프리 토킹을 이어가는데… 어?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문장이 튀어나온다. 그것도 관계대명사, 간접 의문문 같은 걸 나도 모르게 툭툭 내뱉고 있다. 머릿속에서 벌어지던 장황한 일련의 과정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물론 지금도 나는 더듬거리고 문장도 정확하지 않지만, 이제는 번역어가 아닌 진짜 영어를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왜 길게 늘어놓았느냐 하면, 나는 지금 수영 권태기, 이른바 ‘수태기’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4가지 영법을 다 배우고 교정 강습을 받고 있는데, 매일같이 연습을 해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특히 접영이 그렇다. 나도 한 마리의 돌고래처럼 멋지게 접영을 하고 싶은데 현실은 물에 빠진 사람처럼 어설프기만 하다. 힘은 또 어찌나 드는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몸을 이끌고 발전 없는 반복을 하려니 점점 흥미를 잃어간다.

    두 달째 수태기. 매일 물에서 제자리걸음을 한다. 그러나 아직 그만두지 않았다. 제자리걸음은 정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한 걸음 나아갈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No shibal, keep going! 조급해하지 말고 계속 걷자. 돌고래가 되는 그날까지.

    마이클 펠프스의 접영 (10wall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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