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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는 그저 나의 존재가 사라지길 바랐다.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증발하듯 홀연히 사라지는 방법을 알지 못해 여지없이 생을 이어갈 뿐이었다. 어느 날 내 몸에 또 다른 생명이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는 살아야 했다. 누군가의 생명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는 것. 책임감은 사랑이고, 생의 이유이자 의무였다.
엄마가 되자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대하게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스스로 행복한 사람’으로 살길 원한다. 나에게 육아의 가장 큰 목표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가르침이 아닌 본보기가 필요하다. 내가 먼저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최인철 저 <굿 라이프>에 따르면,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상태다. 쾌족(快足), 즉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스러운 상태가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우연히 찾아와 준 것들에 대한 발견이며, 철저히 일상적인 의미이다. 행복은 고통의 완전한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행복은 부정적인 감정 경험보다 긍정적인 감정 경험이 더 많은 상태이다.
행복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자 물음표의 꼬리는 더 원론적인 의문으로 이어졌다. 모두에게 주어진 찰나의 생은 우주라는 영원한 시공간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또한 나도 내 부모로부터 고통을 물려받았고, 그것은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나의 짐이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내 아이들도 나에게 필연적으로 물려받을 고통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그 말인 즉 내가 지금 당장 처참하게 죽어 아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분명 잘못된 생각임을 알았다. 그러나 마땅한 반론은 떠오르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길을 잃은 고뇌 속에서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이건 반대로 영생의 길이 아닐까?’
물론 나는 영생을 바라진 않는다.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내가 말하는 건 육신이 아닌 정신, spirit이다. 내 아이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나의 가치관, 습관, 사고방식, 삶을 대하는 태도 등을 답습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각자 성장하면서 나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취하고 버리고 개선하고 가공하는 과정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잘’ 살아갈수록 아이들은 나에게서 취할 것이 많을 것이고, 만약 그들이 자손을 번식한다면, 우연찮게 번식에 번식을 거듭한다면, 어쩌면 인류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것도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해묵은 고민이 해결되던 그 순간,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고무장갑 낀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취할 행복이어야 한다.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또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길이 남겨질 행복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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