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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 핑크와 블루를 넘어서 | 크리스티아 스피어스 브라운, 창비엄마의 생각/독서 2021. 11. 25. 22:55반응형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에 기어코 핀을 꽂고 머리띠를 씌운다. 이제 갓 옹알이하는 아기에게 ‘조신한 아가씨’로 자라길 요구한다. 여자 아기를 보고 아들이냐 묻는 건 실례로 여긴다.
아직 2차 성징이 시작되지 않은 영유아에게 성별이라는 요소가 과연 얼마나 유의미할까? 인간은 선천적으로 모든 것을 분류하여 인식한다. 효율적인 정보 처리를 위해 범주를 나누고 그에 근거한 고정관념을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성별을 구분할 줄 알게 된 아이들은 동성 친구와 어울림으로써 자신만의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노출되는 많은 것들이 이미 암묵적인 성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여아용’ 또는 ‘남아용’ 장난감, 속눈썹이 긴 여자 캐릭터, 남자 중장비 기사, 여자는 얌전하게 남자는 씩씩하게…. 아이들은 이러한 정보를 여과 없이 흡수한다.
그러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특성과 능력에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평균 격차보다 같은 성별 안의 격차가 훨씬 크다. 아이들에게는 성별을 넘어선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고유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성별은 단지 피부색이나 혈액형처럼 신체적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다. 특히 사춘기 전의 아이들의 성호르몬 수치는 성별 간의 차이가 전혀 없다. 여자아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남자아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동일하고, 에스트로겐 수치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아이를 대하려 무던히 노력하는데, 딸이 언젠가부터 분홍색 치마만 고집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태어난 아들은 차분한 누나에 비해 움직이는데 거침이 없다. 주변에서는 “역시 아들이라 어떻고 저떻고…” 당연하다는 듯 말을 얹는다. 두 아이 육아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차라리 그 말을 인정하는 게 더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고유한 개성에 한계를 정하고 싶지 않다. 불편할지라도 아이들에게 드리우는 고정관념을 조목조목 들어낼 것이다.
수줍게 나에게 흔들리는 이를 보여주던 남자아이,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해 피부가 늘 까맣던 여자아이… 내가 만나온 그 천진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사랑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일 수 있기를.반응형'엄마의 생각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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